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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타서는 안 될 배였다.

 

일본에서 십팔 년이나 운항된 낡은 배였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통해 수입된 선박이었다. 수리는 늘 땜빵으로 이뤄졌고 무리한 개조와 증축이 배의 무게중심을 높여놓았다.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배의 균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평형수가 상당량 빠져 있었다. 선장은 비정규직이었고 일등 항해사와 조기장은 출항 전날 채용된직원이었다. 선사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출항 직전 선박직 선원들이 출항을 거부하며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장의 상태도 평소와 달리 불안해 보였다. 세월호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배였고 국내 이천 톤급 이상 여객선을 통틀어 유일하게 유사시 국정원에 우선 보고를 해야하는 배였다. 안개가 많이 낀 밤이었다. 다른 여객선의 출항이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그날 밤 인천항을 출발한 배도 세월호가 유일했다. 다음날 배는 침몰했다. 예견된 사고였다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배였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을 하고 그들을 옮겨태웠다. 승객들의 출입구가 있는 선미로는 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 몰랐다고는 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원천적으로 통제된 선수 쪽 조타실이었다. 아니 그마저도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선원임을 알았고, 그들은 족집게처럼 476명이 타고 있는 배에서 선원들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또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장과 선원들, 또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배를 빠져나온 승개들만이 가까스로 헬기와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구조가 아닌 탈출이었다. 해경은 끝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의자로 창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외침도 외면했다. 그리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래서 더, 잔혹했다.

 

보다 잔혹한 일은 그뒤에 일어났다. 배가 침몰한 상황에서,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그 상황에서도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에 집결한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애원하고 오열해도 해경은 구조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는 척만 했다. 항의하는 유가족들에게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결코 사실이어선 안 될, 괴담이라 치부되던 소문들이 대부분 나중에 사실로 드러났다. 언론은 종일 가능성과 희망을 떠들었다. 에어포켓이며 골든타임,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속보들이 매체를 장악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작전을 벌인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이었다. 구조는 없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장을 통제한 해경은 적극적으로 골든타임의 구조를 가로막았다. 해군과 119구조단, 각지에서 모여든 민간잠수사들....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수 없었다. 심지어 해군참모총장이 두 번이나 명령을 내린 통영함도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는 감히 해경이 저지할 사안이 아니었다. 구조을 전담한 것은 한 민간업체였다. 선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런 일은 민간업체가 더 전문적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그렇게 골든타임이 지나갔다. 그리고 더는, 누구도 구조될 가능성이 사라진 어느 날 (한 달 후) 논란이 불거지자 그 민간업체의 이사가 TV에 나와 말했다. 우리는 사실 구조업체가 아니라고, 우리는 인양을 하러 온 업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럼 구조는 누가 맡은 거냐는 질문에

 

구조는 국가의 업무죠.

 

라는, 너무나 당연한 답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럼 여태 국가는 무얼 했단 말인가? 가라앉은 배보다 더 무거운 의혹이 우리를 짓눌렀다.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게 없었다. AIS 항적이며, 교신 기록이며, CCTV며.... 아무튼 침몰한 배에 관련된 기록들은 없거나, 불분명하거나, 조작되거나, 공개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무도 그 의문에 답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구조는 국가의 의무였으므로 국가에 대한 의혹의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잔혹보다 끔찍한 의혹이었다. 악마를 보았다고 우리는 외쳤고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울며 조문했다.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 기울어가는 배의 갑판에 모두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찌감치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간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였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라는 말로 일찍 못을 박았고 이 말은 감사원의 입을 통해 또 국정조사에 임한 대통형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수차례 언급되었다. 아니, 그보다 청와대는 TV뉴스를 보고 사고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안전행정부 상황실도 국정원도 YTN뉴스를 보고 사고를 알았다고 했다. 같은 시각 나는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으러 갔다가 뉴스를 보았는데, 말인 즉슨 나와, 세탁소 김씨와, 김씨의 부인인 안씨와, 정부가 동급이라는 얘기였다. 국정원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그리고 이것은

 

실은 매우 이상한 거짓말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형은 모든 걸 바꾸겠다고 했고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치 결백(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었다는)이라도 증명하듯 최동 책임이 아닌 최우선 책임을 져야 할 해경을 해체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독단적이고 강렬한 처벌이었다. 그리고 울었다. 막 울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어쨌거나 대통령이 사과를 한 이상 이 참혹한 사고의 진상이 곧 규명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선거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의 외침도 한결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울먹이며 절을 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참패를 예상했던 여당이 선거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자 상황이 급변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자 이를 가로막은 것은 정부였다. 국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청와대는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청와대 담당자는 "자료 제출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했고, 지침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조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청와대가 그러하니 다른 기관들의 자세도 성실할 리 없었다. 당신 누구야?, 여당 의원은 유가족에게 호통을 쳤고 조사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새로운 도대체, 왜? 가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구조에 최선을 타하겠다 해놓고 왜 구조를 하지 않았나? 란 질문에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해놓고 왜 이를 가로막나? 란 질문이 추가된 것이다. 몇 가지 성과가 있긴 했다. 이미 버린 몸(해체) 해경이 제출한 사고 당시 청와대와의 통화내역을 통해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었고 어렵게 모셔온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사고가 있은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476명이 탄 선박이 침몰한 참사가 일어났는데 아무런 대책회의가 없었으며, 그 위중한 일곱 시간 동안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는 답변을 했다. 그날 국가는 없었다는 가설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국정'조사'였으므로 국정조사는 그걸로 끝이 났다. 수사관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그래서 화두가 되었다. 당신 누구야 소릴 들어가며 퇴장을 당해가며 유가족들이 알아낸 것은 구조를 하지 않은 정부가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힐 의지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누구도 정부를 믿을 수 없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해 여당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대한 변호사협회가 이는 사실이 아닌 근거없는 주장이며, 진실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4.16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한 여당 의원은 말했다. 유가족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그럼 가해자에게 칼자루를 쥐어줘야 하냐고.

 

공공의 적이 공공일 때

 

공공의 적인 공공에게 어떤 혐의가 있을 때

 

그 공공을 심판할 수 있는 건

 

누구냐고 묻고 싶다.

 

의혹을 만들고 키운 것은 정부였다. 그리고 갑자기 프레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3족을 멸한다는 느낌으로 유병언 일가가 부각되었고 결국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유병언의 시신에 관해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니, 애썼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다만 나는 눈이 좀 쓰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과도한 보도였기 때문이다. 제사상에 오른 되지머리를 보는 듯도 했고, 굿판이란 게 이런 건가 생각도 들었다. 실은 그럴 사안이 전혀 아니었다. 과도하고 불필요한 흐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향한 공격이 여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언론과 인터넷과 sns를 통해, 애국보수단체의 행동을 통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럴 사안도 전혀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 불필요한 동작의 흐름을 모아보면 정부가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세월호는 사고다.

 

즉 사고-보상 프레임이다. 이미 여러 의원들이 같은 맥락의 말을 이어왔고, 이 말은 또 여러 갈래의 뿌리를 내리고 또 내렸다. 누가 놀러가서 죽으라 했어요? 그만큼 했음 됐지. 왜 사고로 죽은 걸 가지고 정부를 물고 늘어지냐. 유가족이 벼슬이냐? 사고 원인은 죽은 유병언한테 물어봐라. 차 타고 가다 죽으면 대통령한테 가서 항의하냐?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다. 아무튼 또... 기타 등등. 나는 문득 김보성을 떠올렸는데 이것이 논리라기보다는 의리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다.

 

지금 누군가가

 

세월호가 으리으리한 사고로 정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약 이 나라가 침몰한다면

 

그 원인은 의리일 거라 나는 믿는다.

 

의리 아닌 의리로 유지되는 집단 두 개를 나는 알고 있다. 군대와 마피아다. 윤일병 사건과 세월호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지도자(국방부장관)가 뉴스를 보고 사건을 알았다는 점, 유가족의 손으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 넘어간다는 점, 수십 년간 이런 일이 있어왔으나 어떤 적패도 실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관피아며 해피아, 이런 단어들이 비로소 수면에 떠올랐지만 나는 그 정점에 정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보는 분열로 망해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지 않는다. 분열엔 의리가 없지만 부패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사실 삼십 년 전 한 여가수의 노래 속에 처음으로 떠 있었다.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였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떠 있던 그 유람선... 바로 유병언과 세모해운의 출발이었다. 그는 바로 정권과의 의리를 쌓아나갔다. 그 의리 때문에 오대양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아, 대한민국> 속에 떠 있던 그 유람선은 삼십 년 뒤 세월호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여기서 아무도 지적 하지 않는 세월호의 키워드를 말해야겠다. 그것은 '민영화'다. 세월호에 조금 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선급이며 이런저런 각종 조합들의 이름을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제 이것을 단순한 비리, 유착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예컨데 삼십 년 전 세모의 뒤를 봐주던 공무원이 진급을 하고 퇴직을 했다면 그는 순순히 그 권익을 손에서 놓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떤 단체를 만들어 자신이 해왔던 정부의 역할을 민간이 대행하는, 그런 길을 걸었을까? 그럼 이런 예는 또 어떨까? 세월호를 검사했던 한국선급은 주로 퇴임한 해수부 관리들이 요직에 앉는 비영리단체인데, 경제활성화와는 매우 동떨어진 '비영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지난해 박근혜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창조경제 대상'을 수상했다면... 어떨까? 실제로 한국선급은 대한민국 창조경제 대상을 수상했고, 이는 비단 해운업계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정부의 업무는 민영화되어가고 있다. 때로 정부의 형태를 빌려 민영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권의 핵심이 어떤 정책을 세워 특정 기업이나 업종에 정부의 업무를 맡긴다면, 혹은 판다면... 또 예컨데 국정원과 같은 국가 주요기관이 어떤 특정 세력에 의해 실은 민영화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다시 세월호는 사고다. 라는 명제로 돌아가보다. 자꾸 사고, 사고, 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 이제 겹쳐진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 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직도 이 타이틀을 쓰고 있다. 별다른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 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야당이 왜 '사건'이란 타이틀을 확보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다. 거기에 비해 여당은 노력하고 있다. 필사적이다. AI가 퍼지는데 대통령이 모든 사람 동원해서 막아라 그럼 컨트롤타웝니까?(조원진)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다(주호영)... 나는 이들이 학식이나 판단력이 모자라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모르고 뱉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저들은 '사고'란 타이틀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고, 사고, 사고란 단어가 거론될 때마다 겹쳐진 필름이 떡이 진다는 사실을 저들은 잘 알고 있다. 3족을 멸하듯이 유병언을 부각시킨 이유도 그 것이다. 부각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호위무사라'란 단어를 고딩 때 겨울날 무협지에서 읽은 후 이십칠 년 만에 조우했다. 경호원이나 보디가드란 단어를 기자들이 몰랐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는다. 유병언이 사고의 책임자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의 책임자는 아니다. 사건의 책임자는 따로 있다. 유가족들이, 또 많은 국민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지금 그것을 정부가 가로막고 있다. 도대체, 왜?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만 하려 한다. 사고와 사건의 관계에 관한 얘기이다. 우선 사고에는의도가 없다. 자연재해가 그러하며 인재의 경우에도 실수, 태만, 방심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지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사고는 사건이 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교통사고가 사건으로 발전하는 가장 흔한 예가 뺑소니다. 신고와 구호-수습의 '의무'를 져버린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보를 중시하고 애국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군대에서 탈영이 얼마나 중차대한 범죄임을. 특히 전쟁과 같은 유사시 탈영이 어떤 처벌을 받는가를.

 

왜?

 

국민이 국가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져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져버렸을 때

 

국가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당신은 의무를 다해왔고

 

한 푼 빠짐없이 세금을 납부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 언제나 여당을 지지해왔다.

 

그런 당신이라면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다.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

 

눈물을 흘렸다는 걸 안다.

 

탈영병들도 모두

 

눈물을 흘린다.

 

앞서 말한 '의도'라는 이 중요한 단어를 기억하자. 역시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 의도가 있으므로 해서 사건에는 위장과 은폐, 의혹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사건과 실화』라는 잡지는 창간될 수 있어도 『사고와 실화』라는 잡지는 창간될 수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대상이 해경이든, 언론이건, 국정원이건, 청와대건... 어쨌거나 공공의 주체인 당신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선박이 침몰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말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서슴없이 했다.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앞에서도, 야 거짓말하지 말라고 씨발 년아 소릴 들어가면서도 (KBS <굿모닝 대한민국>),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다 바꾸겠다고 거짓말을 했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는 거짓말을 했고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전을 벌인다는(연합뉴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을 했다. 304명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그러니까 당신들은 이루 열가하기 힘든 많은 거짓말을 했다. 왜냐고는 묻지 않겠다. 더는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의도에서 비롯된다. 아니, 거짓말은 그 자체가 의도이고 사건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많은 거짓말이 필요했던 사고 수습은 없었다. 당신들은 어떤 의혹을 받아도 싸다. 역사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로 못을 박자면

 

사고로 위장된 사건은 있어도

 

사건으로 위장된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예컨데 그런 일이 없었는데, 정부가 전 언론을 동원, 자국의 군함이 적국의 어뢰를 맞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아, 뜨끔하거나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1964년에 있었던 미국의 통킹만 사건을 말하는 것이니까(훗날 베트남전의 빌미를 얻기 위한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이런 개쓰레기 같은 조작은 인류사를 통틀어 극히 드문 일이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사고와 사건의 관계이다. 실은 정부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내가 볼 때 진실을 밝혀야 할 입장에 선 것은 유가족들이 아니라 당신들이다. 이 참사가

 

사고로 위장된 사건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라앉은 세월호 속에서 한 대의 노트북이 건져졌고, 거기서 또 국정원의 이름이 적힌 파일이 나왔다.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곧바로 국정원이 이에 답했다. 아니었다. 이미 사망했다는 국정원이 말한 파일의 작성자는 문서가 작성된 이후 입사한 선원이었다. 당신들은 이미 지난 대선 때 댓글 공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으며 이 와중에 군 사이버 사령부의 선거 개입 역시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국정원장이 사과를 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나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사건 초기 참사가 난 사실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정말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다.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언제나 위중한 업무를 도맡아야 할 국가의 주요기관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렵다.

 

유가족들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보이는 사고-보상의 프레임으로는 이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아마도 다음 프레임은 세월호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또 이어질 프레임은 세월호 유가족 속에 불순 선동세력이 있다. 그리고 당신들의 비장의 무기 당신들의 오류~겐 종북으로 몰아갈까 나는 두렵다. 그럴 사안의 일이 아니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는 국민이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식으로 뭉개고 갈 일이 아니란 말이다. 진심으로 대통령께 고하건데 아직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당신도 분명 그 꽃다운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실 구석구석 수색해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비서실장의 말 그대로, 누가 보기에도 생각보다 배는 너무 일찍 넘어갔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건데 각하, 지금 당신에겐

 

저 불쌍한 유가족들을

 

구조할 기회가

 

아직은

 

아직은 남아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기회이다. 역사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진실이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서 이 글을 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내릴 수 없는 배다.

 

일본이 삼십 육 년간 운항하던 배였고 우리가 자력으로 구입한 선박이 아니었다.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승전국어었던 미국은 군정을 통해 배의 평행수를 조절했고 배의 관리를 맡은 것은 예전부터 조타실과 기관실에서 일해온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벨로스터 벨브의 한쪽을 아예 비웠다. 평형수를 비우면 비우는 만큼,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증가했다. 적재와 적재와 적재와 적재...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생각했다. 배는 늘 통제되고 관리되어 왔다. 2층 객실에서 3층 객실로, 이어 4층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언제나 좁고 미어터졌다. 붐비는 통로에서 또 복도에서 우리는 늘 방송을 들었다. 잘살아보자는 방송, 하면 된다는 방송이었다. 올라가기 위해, 한 층이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발전과 번영은 종교가 되었고 배가 왜 이렇게 기울었지?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이란 이름의 이단으로 몰려야 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기울어야 했던 국민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 기울기는

 

안정적인 것이었다. 제대로 포박되지 않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린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의 각도 역시 이 기울기와 각을 같이 한 것이었다. 배는 계속 운항을 해야 했다. 평형수를 뺐음에도 배의 무게중심은 생각보다 낮고 안정적이었다. 왕정에서 식민지를 거쳐 영문도 모르고 배의 아래칸에 선적된 '국민'이라는 화물이 있어서였다. 항해가 계속되고 사정은 달라졌다. 무분별한 개축과 증축이 이어지며 무게중심은 올라갔다. 84퍼센트가 대학에 진입하는 초유의 고학력사회가 되었다. 정권에 눈먼 선원들은 여전히 기울기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탐욕에 눈먼 국민들은 층수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당연히 문제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땜빵과 땜빵과 땜빵과 땜빵... 그리고 어느 날

 

마치 이 배를 닮은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는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 할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이 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국가, 박민규 / 문학동네 2014 가을호

 

[출처] [펌] 눈먼 자들의 국가

배움의 기술

 

 

영화 <바비 피셔를 찾아서>의 실재 주인공 조쉬 와이츠킨이 쓴 <배움의 기술(The Art of Learning)>의 발췌. 조쉬 아이츠킨은 체스의 신동 소리를 듣던 사람인데, 영화가 나온 이후로 일종의 연예인이 돼버린다. 한창 사춘기 때 가는 곳마다 여학생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느낌은 어떨까. 물론 모든 사춘기 소년의 꿈이겠지만 막상 당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포스의 독이 되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탓에 와이츠킨은 일찌감치 마음 다스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즈음 접하게 된 것이 태극권이다.

 

전혀 다를 것 같은 체스와 태극권. 하나는 머리를 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몸을 쓰는 일이지만 와이츠킨이 느낀 것은 결국 ‘배움’이라는 줄기에서 뻗어나온 두 개의 다른 가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와이츠킨은 태극권에서도 챔피언의 경지에 오른다.

 

원래 이런 류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자기계발 류의 책은 한 두권 정도 읽으면 그 얘기가 그 얘기이고, 또한 요즘 나오는 것들은 알맹이 없는 속빈강정인 경우가 흔한 까닭이다. 이런 책을 고르는데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는데, 그것은 책을 쓴 사람이 실제로 그 책 내용을 체험한 사람이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따위의 책은 빈털털이였던 저자가 ‘부자되는 법’에 대한 책을 써서 부자가 된 가당찮은 경우이다. 이런 류의 책은 책의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사기에 불과하다. 심리학자 등속의 ‘학자’들이 쓴 자기계발서도 죄다 빈 껍데기 언어의 나열에 불과한 경우가 다반사. 실질적 경험에서 나오는 말과 머리에서만 머문 관념적 언어는 천양지차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책을 쓴다면 그 저자가 배움에 대해서는 일가를 이룬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와이츠킨은 자격이 있다. 다만 그가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이 독이다.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팔딱팔딱 뛰는 아이디어를 관념적 언어로 장식을 하느라,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보석 위에 진흙을 쳐바른 듯한 느낌 때문에 속이 뭉쳐오곤 한다.

 

원래 따로 떼어서 올린 글들을 하나로 묶어서 다시 올려본다.

 

배움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정상에 오르는 소수의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둘째, 확률적으로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 잘 하려고 노력할(pursuing excellence) 필요가 무에 있나?

 

이에 대한 답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 불굴의 정신(resilience), 둘, 우리가 삶에서 벼르는 여러 목표의 연계점을 찾는 것. 그리고 셋, 매일 매일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

 

대개 배움에 대한 접근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발달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하나는 도 아니면 모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접근이고, 또 하나는 차근차근, 하나 하나 단계를 밟아 정복해 가는 과정으로 ‘배움’을 보는 접근법이다. 전자(前者)는 ‘배움’을 하나의 ‘객체’ 또는 ‘실체’로 보는 것으로, 다 얻지 못하면 하나도 얻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배움의 ‘실체entity’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후자(後者)는 배움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절차적, 단계적 incremental’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실험 하나를 해보면 이 두 가지 접근법의 차이가 또렷이 도드라진다.

 

우선 아이들에게 아주 쉬운 문제를 내준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제의 정답을 맞춘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준다. 이번 문제의 정답을 맞춘 아이는 거의 없다. 이 때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어떤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고, 어떤 아이들은 완전히 얼어 붙어 버린다. 결과는 둘 다 정답을 맞추지 못하지만, 서로 접근법이 다른 두 그룹의 아이에게 있어서 다음 문제를 푸는 데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즉, 이번에는 다시 쉬운 문제를 내준다. 당연히 모두 맞추어야 하지만 ‘실체’적 접근법을 취한 아이들은 자신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인데도 포기해 버린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이러한 류의 문제에 ‘재능이 없는 것’을 발견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물안의 개구리

 

“  한 번은 아리조나에 내려가서 강의를 하고 지도 체스 ? 동시에 20~50명과 두는 체스(정식 용어는 simultaneous exhibition, 보통은 줄여서 simul이라고 한다)를 둔 적이 있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는데,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아들 자랑 단지에 뿔이 났다. 일 년 넘게 체스 게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 들으면 대충 상황 유추가 된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다.

 

그 아이를 만나보니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자신의 학교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체스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포석(opening attacks)과 묘수 몇 개를 배워서 다른 아이들을 압도했고, 체스의 기본에 대해서도 감이 있는 아이였다. 이러다 보니 모두가 천재 났다고 띄워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자기가 이길 수 있는 학교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 외에는 절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 아이가 가장 자주 게임을 하는 상대는 제 아버지였다. 학교 친구들에게 있어서 이 아이는 체스의 신이었지만, 전국에 좀 한다 하는 아이들에 비해서는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그 아이는 그 상태를 선호했다.

 

행사 내내 그 아이는 체스를 두려 하지 않았다. 지도 대국에서도 두려 하지 않았고, 내 지도에 따르는 것을 거부한 유일한 아이였다. 완벽한 겉모습에 금이 가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소라게로부터 배우는 교훈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길고 긴 과정, 고속도로가 아니라 자갈밭 길로 가는 여정(旅程)을 포용함이다.  ‘웬만큼’ ‘대충’ ‘남들만큼’이라는 껍질 속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깨뜨리고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은 성장통을 동반한다. 탁월함의 추구는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소라게(hermit crab)이라는 것이 있다. 이 게는 몸통이 말랑말랑하고 자기자신의 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 탓에, 빈 소라 류의 껍질을 달고 다니면서 그 속에 숨어 산다. 따라서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소라 껍질이 필요해지며, 소라게는 지금까지 숨어 지내던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보호막을 찾아 떠나야 한다. 이 여정이 짧은 경우는 괜찮지만 여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목숨은 위험해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소라게는 더 똑똑해지고, 더 현명해지고, 더 강해진다. 껍질과 껍질 사이의 배움의 틈새, 이것만이 성장으로 인도할 수 있다.

 

***

 

이런 아이들이 있다. 재능이 있든 주제 자체가 쉽든 간에 자신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조금 어려운 것은 기피하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든지, 농구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 “진짜로 한 게 아니야( I wasn’t really trying)”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물론 이러한 아이들이 평생  뭔가를 진짜로 하는 법은 없다.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것

 

맨해튼의 거리는 분주하다. 그리고 무법천지다. 신호를 위반하는 차는 예사고 일방통행을 거슬러 오는 자전거도 흔하다. 혼잡한 보행자들의 흐름을 운전자들은 마치 곡예를 하듯이 빠져 나간다. 뉴요커들은 이러한 환경에 익숙하다. 사이렌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스치듯 지나치는 택시들, 이러한 것들에 무신경하다. 그저 익숙한 일상일 뿐이다. 기적처럼 모든 것들이 별 탈 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조금만 어긋나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녀는 나로부터 몇 미터 앞에 서 있었다. 정장 차림의 미인이었다. 귀에는 헤드셋을 꽂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헤드셋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느닷없이 그녀는 차도로 발을 내디뎠다. 혼란스러운 일방통행 거리에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차가 오나를 확인해야 할 방향이 틀렸다.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차는 왼쪽에서 오는데 그녀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려진 채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왼편에서 자전거 한 대가 튀어 나왔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보고 놀랐지만 가까스로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약간의 접촉이 있었지만 그녀는 다치지 않았다.

 

이 때 그녀는 다시 보도로 되돌아왔어야 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리고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돌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내빼는 자전거 탄 사람에게 욕을 퍼붓느라 그녀는 계속 차도에 서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 순간 또 하나의 물체가 그녀를 덮쳤다. 이번에 그녀는 전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트럭이었다. 그녀가 트럭에 받쳐 튕겨 나가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나의 눈에 잡혔다. 시간은 그 순간 그대로 정지된 듯했다.

 

이것은 그녀의 운명이었을까? 이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는 틀린 방향을 보고 건너려 했다.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실수였다. 그리고 자전거에 접촉하는 사고가 났을 때 그녀는 첫 번째 실수를 깨닫고 그 실수를 만회해야 했다. 다시 보도로 돌아옴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편안한 살이에 파문을 일으킨 그 괘씸한 자전거에 대한 화가 그녀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이로써 애초에는 별 것 아니었던 실수를 강화하게 된다. 이번의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

 

실수를 한 다음 이로부터 즉각 회복하는 것, 다시 집중력을 회복하고 맑은 정신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승부사들과 퍼포머(performer)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첫 번째 실수는 대부분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첫 번째의 기우뚱거림을 바탕으로 두 번째, 세 번째의 실수가 이어지면 결국 연쇄반응을 일으켜 침몰해 버린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나선형의 하향곡선(downward spiral)이다.

 

사람들은 여세(餘勢, momentum)라는 것을 마치 하나의 실체인 양 이야기한다. 마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제 3의 선수인 양 여긴다. 승부의 세계를 어릴 때부터 전전해 온 나로서도 이 여세의 실체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이 여세를 내 편에 놓고 몰아야 한다. 이 파도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고 멍하니 있으면 그대로 빠져버린다. 흐름을 타고 다시 파도에 편승해야 한다. 이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하느냐에 승부는 갈린다.

 

***

 

체스나 운동경기와 같은 승부의 세계가 아닌 다른 분야라고 하더라도 톱에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실수를 흐름 속에 묻어버린다는 점이다. 위대한 배우가 무대 위에서의 실수를 관객이 보기에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 있는 것처럼 여길 만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수를 승부나 일에서의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완벽한 승리나 완벽한 일의 결과에 대한 흠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실수는 두려움을 낳고, 불확실성을 낳으며,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의사결정능력은 흐릿해지고 결국 하향곡선을 타게 되고 만다.

 

두 천재의 공통점

 

앞에서 언급했듯이 브루스 스승님은 나에게 마무리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는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이 포석(opening variations)부터 배우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스승님은 빈 체스판을 내 앞에 내 놓았다. 단순화된 형태, 그러나 원리 원칙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형(形, positions)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 초점은 단 세 개의 말로 구성된 형(形)이었다. 킹과 폰(pawn),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킹.

 

[▶체스에서 중요한 것 중에 opposition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맞짱 포지션 정도 될까? 킹과 킹 사이의 사각형의 수가 홀수 일 때 두 킹은 맞짱 포지션에 있다(the kings are in opposition), 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킹의 힘과 폰의 섬세한 역할에 대한 직관적 감(感)을 얻게 되었다. <opposition>에 관한 원리를 배웠고 빈 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숨겨진 힘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쭈크쯔방(zugzwang, 바둑의 급소 치중(置中)과 비슷)에 대해서도 감을 터득해 나갔다. 스승님과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원리 원칙 자체가 아니었다. 그 원리 원칙들을 나의 창의적 직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아 나갔다. 그 후 수 백 시간에 걸쳐 거의 모든 마무리의 형(形)을 연마했다. 루크(rook), 비숍, 나이트 마무리 등등.

 

이러한 훈련은 나로 하여금 가지가 아니라 줄기와 뿌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배움의 기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내재화(內在化)시키고 있었다. 곧, 지식과 직관, 그리고 창의력 사이의 상호작용이었다. 나의 교육은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는 형태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아이들은 포석(布石, opening variations)부터 배웠다. 어떤 식으로 판을 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수 많은 변형과 이론이 존재한다. 이러한 포석의 형(形)을 배움으로써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함정과 지뢰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쉽게 이길 수 있게 된다. 아주 매혹적이다. 조금만 배워도 성과가 바로 나온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포석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은 일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평생 동안 새로운 포석의 형(形)을 외우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계속 업데이트되는 ECO(Encyclopedia of Chess Openings)를 따라 잡아야 한다. 중독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배움이 가장 나쁜 점은 ‘배움’ 자체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을 터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체스는 결과다. 승부의 결과다. 성과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배우는 것은 이를 위한 필요악일 뿐이다.

 

[▶우연히 이창호에 대한 글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부분을 발견했다. 글은 '이창호가 강할 수밖에 없는 세가지 이유'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둘째로 테크닉적인 면인 ‘끝내기’의 완벽도를 들 수 있다. 보통 바둑계의 상식으로, 끝내기 부문은 포석과는 달리 공부로 되는 분야가 아니다. 끊임 없는 경험과 연륜이 쌓여 터득되는게 끝내기인데 이창호는 어린 나이부터 포석과 중반부문에 앞서 이 마무리 부문부터 먼저 도통하는 기현상을 보였다(이것은 바둑계에서조차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 LeeChangHo.com

 

배움에 있어 쉬이 빠지는 함정

 

로버트 퍼직(Robert Pirsig)이 쓴 ‘선(禪)과 모터 사이클 정비(Zen and Motorcycle Maintenance)’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의 주인공 피두러스가 어느 시골 대학에서 작문 강사로 재직할 당시 학생들에게 그 대학이 있는 동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이 태어나고 자란 그 자그마한 마을에 대해서 글짓기를 해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여학생 한 명이 이 숙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단 한 글자도 쓸 수 가 없었다. 도대체 이 조그만 동네, 아무 것도 없는 동네에 대해 쓸 말이 무에 있을까? 흥미로운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두러스를 찾아가서 하소연한다.

 

그녀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난 피두러스는 숙제를 바꾸어준다. 동네에 대해서 쓰지 말고 학교 앞에 있는 조그만 극장에 대해서 쓰라고 말한다. 글의 첫머리는 왼쪽 상단의 벽돌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한다. 처음에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지만 그 다음 날 20페이지에 달하는 멋진 작문을 해왔다. 그 동네는 너무 작은 것이 아니라 너무 컸던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이야기는 탁월함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성패를 가르는 교훈을 주고 있다. 테마는 넓이가 아닌 깊이이다. 배움의 원리는 미세하고 신비로운 마이크로 세계를 뛰어들어 매크로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산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 텔레비전, 휴대전화, 비디오 게임, 그리고 인터넷, 이런 것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우리를 함몰시키고 있다. 이러한 자극들이 계속되면 우리는 중독될 수 밖에 없고, 좀 더 많은 정보, 좀 더 새로운 정보를 찾아 헤맨다.

 

금방 싫증이 나고, 금방 다른 데로 정신을 팔고, 금방 현재로부터 분리되어 나간다. 이런 상황에 빠지면 우리는 마치 수면에서만 펄떡이는 작은 물고기 신세가 되어 버린다. 2차원의 세계에 산다. 그 밑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심연(深淵)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이러한 삶의 맥을 끊지 않고 지속한다면 끝장이다.

 

[출처] [펌] 배움의 기술

1953 vs. 2012 - 에베레스트 등반 장비 비교

 

 

1953 vs. 2012 - 에베레스트 등반 장비 비교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처음으로 올랐습니다.

2012년에는 에베레스트 등정 6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산악인 힐러리 오닐이 힐러리 경이 올랐던 바로 그 코스로 도전하여 성공하였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 두 등정에 쓰인 장비들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과연 60년의 기간 동안 등산 장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등산장비


위 사진은 힐러리 경과 노르가이가 8300미터 근처를 오르는 모습입니다.

당시 짐의 무게는 각각 20킬로그램 정도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초경량 장비들이 개발되어 무게가 당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낭

 

배낭


힐러리 경 시대에는 외부 플레임 배낭이 당연했지만, 군사용 알루미늄 플레임을 사용해서 무게를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2012년 힐러리 오닐은 자동차 에어백에 사용되는 첨단 소재를 사용한 노스페이스의 프로핏 52를 사용했습니다.

가볍고 질기고 피켈과 아이젠 수납 걸이와 포켓도 있는 프로핏 52는 알파인용이지만 백패킹용으로도 좋습니다.

 

 

 

 

 

 

 

헬멧

헬멧


힐러리 오닐은 블랙다이아몬드의 하프돔 헬멧을 썼는데, 무게가 345그램에 불과합니다.

외부는 ABS로 만들었고, 안에는 폴리스틸렌 폼이 있어 완벽한 보호를 해줍니다.

1953년에는... 안 썼습니다.

 

피켈


피켈


힐러리 경은 프랑스의 클라디우스 시몽이 만든 것을 사용했습니다.

단조 강철에 손잡이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무게가 340그램인 블랙다이아몬드의 레이번 울트라 아이스액스를 사용했습니다.

속이 빈 알루미늄 샤프트에 머리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제품입니다.

길이는 50센티미터로 힐러리 경 것보다는 25센티미터 정도 짧았습니다.

 

안경

안경


1953: 비행사들이 쓰던 고글에 검게 물들인 유리렌즈를 달아서 자외선과 설맹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2012: 스미스 옵틱스의 인터체인지어블 폴라라이즈드 고글을 사용했습니다.

렌즈가 쉽게 탈착 가능해 햇빛 상태 변화에 따라 조절이 가능합니다.

테가 없어 시야폭이 넓고, 특수코팅으로 김이 서리지 않습니다.

 

등산화

 

등산화


1953: 힐러리 경은 영국산 고산지대용 등 2가지 종류를 사용했습니다.

당시로는 대단히 가벼운 제품이었고, 방수포 안에 단열재를 넣은 구조였습니다. 


2012: 스카르파의 팬텀 8000.

질기고 통기성이 좋은 코듀라, 열반사 알루미늄, 폐쇄 셀 폼 단열재, 방수 지퍼 등으로 고산지대 등반용으로 인기 있는 제품입니다.

가볍고 완전 방수에 착용감도 좋습니다.

아이젠

아이젠


1953: 크고 무거운 강철 아이젠.


2012: 블랙다이아몬드의 사브레투스.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이며, 무게가 한짝당 450그램 정도입니다.

앞쪽의 수평으로 된 뾰족한 부분으로 수직 빙벽을 찍으며 올라갈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의 테크놀로지


힐러리 경 당시에도 무선 통신 기술은 있었지만 고지대에서는 사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힐러리 경(오른쪽)은 탐험대원인 조지 로우가 무전을 보내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무전기와 휴대폰을 사용하며, 심지어 산 정상에서 통화나 문자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여행일지


1953: 힐러리 경은 줄이 그어진 노트와 연필로 기록을 했습니다.


2012: 오닐은 애플 아이패드로 일지를 적었습니다.

 

카메라

 

카메라


1953: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찍은 노르가이의 유명한 사진은 코닥 레티나로 찍었습니다.

35mm 필름과 레인지파인더 바디였습니다.


2012: 오닐은 캐논 파워샷 S95를 사용해 10메가픽셀로 촬영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구형이 됐고, 위의 사진은 S100입니다)

 

쌍방향 통신기기


쌍방향 통신


1953: 산에서 캠프와 캠프 간의 소통은 무선 워키토키로 했습니다.

무개가 개당 2킬로그램이 넘었고, 건전지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속옷 아래 넣어 따뜻하게 보관해야 했습니다.


2012: 요즘은 휴대폰 서비스가 쿰부 지방은 물론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터집니다.

오닐은 애플의 아이폰 4S를 가져갔습니다.

 

등산복장

 

 

등산 복장


등정을 마치고 캠프4로 돌아오는 탐험대.

힐러리경과 노르가이는 서로를 연결했던 로프를 아직도 풀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의 헐렁한 면바지는 첨단 소재를 이용한 날렵한 다운 등산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등산복

 
등산복


1953: 면과 나일론을 소재로 한 얇고 방풍이 되는 군용 옷을 입었습니다.


2012: 외피는 고어 윈드스토퍼, 충전재는 800필파워의 구스다운, 접이식 스노클 후드,

이밖에도 10여 가지 특장점을 지닌 노스페이스의 히말라얀 슈트를 입었습니다.

이것은 세계 최고봉을 오르는 이들의 공통적인 의상으로, 보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활동하기에도 편합니다.

 

속옷 (미드 레이어)

 

속옷(미드 레이어)


1953: 스코틀랜드산 울로 된 점퍼슈트.


2012: 2XU의 압축 타이트는 보온성뿐 아니라 등반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옷이 탄력 있게 근육을 감싸주어 오닐은 등산을 더욱 힘차게 할 수 있었고, 혈액순환도 잘 되었다네요.

 

모자


모자


1953: 등반 중간중간 힐러리 경은 여동생이 짜준 사파리 모자를 썼습니다. 


2012: 오닐은 노스페이스 솔라 아머 햇의 넓은 챙으로 햇빛을 막았습니다.

메시와 가벼운 나일론 재질로 통기성이 뛰어납니다.

 

기본 옷(베이스 레이어)

 

기본 옷(베이스 레이어)


1953: 듀오폴드에서 만든 롱 언더웨어를 입었습니다.

이 합성섬유는 천연소재보다 땀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 면이나 울이 전부이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제품으로 여겨졌습니다.


2012: 오닐은 노스페이스의 플래시드라이를 입었습니다.

플래시드라이란 미세한 공기 입자가 표면적을 넓혀 수분(땀)을 퍼지게 함으로써 보더 빨리 마르게 하는 기술입니다.

 

얼굴 / 목 게이터

 

 

얼굴/목 게이터

 

1953: 탐험대는 속옷을 만들어주었던 스코틀랜드 회사의 울 스카프를 사용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용도의 제품이 아직 없었기에 특별 제작되었다네요. 

 

2012: 오닐은 합성섬유로 된 오리지널 버프를 사용했습니다.

얇고 재봉선이 없으며, 모자나 헬멧, 후드 아래에 꼭 맞습니다.

 

에버레스트 캠프사이트

 

에버레스트 캠프사이트


텐징 노르가이(왼쪽)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캠프4에서 성공을 자축하며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텐트는 면과 나일론을 섞어 짠 것입니다.

오늘날 등반가들은 전해질이나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회복 음료를 마시지만, 등반가와 셸파 사이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차가 인기입니다.

그들은 초경량 텐트와 침낭에서 쉬며, 고칼로리 스낵으로 영양을 섭취합니다.

 

텐트

 

텐트


1953: 탐험대는 도어에 피아노선 심을 보강하고, 보온을 더하기 위해 탈착가능한 나일론 이너를 더한 텐트를 사용했습니다.

당시의 많은 텐트는 이렇게 아우터는 면으로 만들고, 이너는 나일론을 사용했습니다.

 

2012: 3인용 노스페이스 VE 25를 사용했습니다.

립스탑 캐노피와 케블러 가이라인(스트링), 폴리우레탄 창을 지닌 이 텐트는

영하 50도의 추위와 히말라야의 강풍에도 견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침낭

 

침낭


1953: 무게가 4킬로그램이나 나갔으며, 나일론 외피 속 다운 충전재가 길고 추운 에베레스트의 밤을 견디도록 도와주었습니다.

 

2012: 무게가 힐러리 경 때의 3분의 1에 불과한 노스페이스 인페르노를 사용했습니다.

영하 30도에도 따뜻하며, 850필파워 구스다운으로 매우 가볍고, 퍼텍스 외피는 완전 방수가 됩니다.

식량

 

식량


1953: 힐러리와 노르가이는 생선 통조림, 레모네이드, 치킨누들스프, 살구, 차 등을 먹었습니다.

 

2012: 오닐은 클리프샷, 파마산 치즈, 살라미, 요크 페퍼민트 패티를 먹었습니다.

트럭캠핑카 단속에 대한 변호사 의견서

 2019. 1. 21. 10:48

 

요즘 자작캠핑카.트럭캠핑카 들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이 많은데

사실인것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상당수 존재하는것 같습니다.

그중 한가지가 트럭에 캠퍼를 장착하고 운행하는 트럭캠핑카는 단속의 대상인가 아닌가 입니다.

어쨋든 결론은 지금 현재는 단속된 정보는 없지만 작년 10월까지 단속되신 분이 있습니다.

트럭캠핑카 관련 법안이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각자 주의를 요하는 중요한 시점인것 같습니다.

트럭캠퍼를 운행중 적발된 사례도 있지만

캠퍼를 불법제작물로 보고 제작사를 단속하던중 계약서가 노출되어 입건된 사례도 있습니다.

17년8월에 입건된 이 사건은 작년 12월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위헌제청과 국토부에서 법안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 중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것 입니다

위 내용과 관련하여 자동차관련 전문변호사 이신 "강상구"변호사의 자동차관리법 위반에 대한 의견서를 공유 합니다.

내용이 길지만 트럭캠핑카를 소유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은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트럭캠핑카의 자동차관리법 위반에 대한 의견서

차량에 트럭캠퍼를 부착하였다는 점과 트럭캠퍼의 적재가 관할관청의 승인 대상이라는 점을

인정할수 없다는 내용 입니다

캠퍼를 부착물로 볼것인가 적재물로 볼것인가에 대한 의견 입니다.

이동식주택은 크레인이나 지게차등 별도의 장비가 있어야 하차가 가능하지만 캠퍼는 스스로 상하차가

가능한 구조인데 이동식주택을 싣고 가는 차는 화물적재 차량이고 캠퍼를 싣고 가는 차는 불법부착물 또는

불법튜닝 차량이라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트럭캠퍼를 이동식주택을 싣고 이동하는 화물차량과 비교하며 조목 조목 반박하는 내용 입니다.

캠퍼를 적재했다는 것만으로 적재장치 변경으로 보는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은 국민신문고의 회신 내용 입니다.

이상 "강상구"변호사의 의견서 원문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단속하는 경찰들도 관련 법규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로 이 의견서가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현재 자작캠핑카 관련 법률에 대한 내용은 다음번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트럭캠핑카 단속에 대한 변호사 의견서

내년 상반기부터 승용 화물차→캠핑카 튜닝 허용

조선비즈 

 

 

입력 2019.08.08 11:00

소량 생산자동차는 충돌 및 파괴시험 면제

내년 상반기부터 승용차와 화물차를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11인승 이상 승합차만 캠핑카로 바꿀 수 있었다. 루프탑 텐트나 캠핑용 그늘막인 ‘어닝’ 등 앞으로 튜닝 사전승인 및 검사를 받지 않고도 설치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장치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교통부는 8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자동차 튜닝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튜닝은 자동차의 성능을 향상하거나 외관을 단장하기 위해 구조·장치를 바꾸거나 장치를 추가하는 것을 뜻한다. 튜닝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규제가 엄격해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만큼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았다.

경기도 김포한강오토캠핑장에서 한 가족이 캠핑카 그늘막을 펼치고 캠핑을 즐기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먼저 승합차 외에 승용차와 화물차, 그리고 소방차와 같은 특수차 등 모든 차종을 캠핑카로 튜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캠핑카가 아닌 자동차를 캠핑카로 개조하고자 하는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도록 교통안전공단의 사전 승인을 받은 뒤 튜닝을 진행하고 사후에 검사도 받도록 했다. 시행규칙 개정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된다. 국토부는 매년 6000여대의 튜닝이 더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윤진환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은 "캠핑카에는 넉넉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간 승합차만 개조를 허용했었지만, 현재 캠핑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고 다양한 차종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가능 차종을 확대했다"면서 "사전 승인 및 사후 검사를 통해 안전기준 준수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수차와 화물차 간 차종을 바꾸는 변경튜닝도 내년 상반기부터 가능해진다. 차체와 안전기준 등 유사한 부분이 많고 수요도 많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특수차는 규정된 사용연한이 지난 이후 화물차로 개조하면 충분히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그간 허용이 안 돼 왔다. 튜닝 시 안전기준 준수 여부를 엄격하게 검사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연간 5000여대의 튜닝이 더 이뤄질 전망이다. 오토바이 등 이륜차에 대한 튜닝 세부기준은 내년 하반기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자동차의 28개 구조 및 21개 장치 중 15개 구조 및 13개 장치는 튜닝 시 원칙적으로 사전 승인 및 사후검사를 받아야 한다. 앞으로 동력전달장치 및 등화장치 등 8개 장치는 튜닝 사전승인 대상에서 내년과 2021년에 단계적으로 제외된다. 지난해 총 튜닝건수 16만여건 중 44%인 7만1000여건이 승인대상에서 빠지게 된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사전승인 뿐 아니라 사후검사도 면제받을 수 있는 장치변경 항목도 기존 59건에 불과했는데 27건이 더 늘어난다. 자전거캐리어 및 스키캐리어, 루프탑 텐트와 어닝 설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안전이 검증된 튜닝인증부품도 기존 5개에서 16개로 늘어난다.

수제 스포츠카 등 연간 100대 이하로 소량 생산되는 자동차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 활성화를 유도한다. 지난 2015년부터 별도 인증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인증비용 부담 등 여전히 문턱이 높아 인증을 받은 업체가 한 곳도 없었다. 충돌 및 파괴시험 등의 안전기준을 면제해주고 그간 미흡했던 세부 인증기준도 마련하기로 했다. 생산대수 기준도 100대에서 약 300대 수준까지 완화할 예정이다.

 

트럭 캠핑카…‘캠핑카법’ 법사위 통과

핑클이 불 지핀 ‘캠핑카 로망’…2종 면허도 운전 가능

310호 2019년 08월 05일

 

 

렉스턴 스포츠 칸을 캠핑 용도로 개조한 모습. 사진 쌍용자동차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는 자동차 종류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캠핑카법(자동차 관리 개정안)’이 8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현행법이 캠핑카로 사용하도록 허용한 승합차 외에 승용차, 화물차도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대신 캠핑카로 개조할 때 지켜야 할 안전 기준을 따라야 한다. 캠핑카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실 관계자는 “이르면 2020년 상반기 중에 이 법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캠핑카 관련 법안이 논의될 정도로 캠핑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법이 시행되면 캠핑카 시장은 지금보다 활성화하고 캠핑카 문화를 즐기는 인구도 늘어날 수 있다. ‘캠핑카 로망’을 가진 이들이 살펴볼 점을 따져봤다.


캠핑카 문화 확산 추세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레저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캠핑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반 차를 타고 캠핑장에 가서 텐트를 치는 방법도 있겠으나, 캠핑카를 이용하면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 주차장만 있으면 어디든 세워 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1세대 걸그룹이었던 핑클 멤버가 캠핑카를 몰고 여행을 떠나는 ‘캠핑클럽’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면서 캠핑카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강미선(32)씨는 이 방송을 보고 당장 이번 여름 휴가를 위해 캠핑카 대여를 예약했다. 그는 대학 동창들과 일주일 동안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할 생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60만 명이던 국내 캠핑 인구는 2016년 500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엔 캠핑 인구가 6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캠핑카 등록 대수 역시 늘었다. 조정식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 52대였던 국내 캠핑카는 2018년 6월 말 현재 1329대로 증가했다.

 

주차·관리 부담 피하려면 대여가 나아

캠핑카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지만 소유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쏠라티, 르노삼성의 마스터를 캠핑카로 개조한 경우 차고가 높아 건물 내 주차장에 주차하기 어렵다. 한국에는 단독주택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유지·관리 부담을 따진다면 대여가 현실적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캠핑카를 거주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1년에 캠핑카를 타는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일반인이 캠핑카를 구입하는 건 비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차병희 한국캠핑협회 회장 역시 “한국에는 미국처럼 캠핑카 화장실을 청소해주는 업체가 없어 관리가 힘들다”며 “캠핑카를 잠시 빌리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고 말했다.

전국에는 2309개의 캠핑장이 있다. 이 중 캠핑카를 주차해놓고 야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은 300여 개다. 지역별로 보면 경상북도(55개)에 가장 많다. 강원도에 53개, 경남에는 46개가 있다. 충북과 충남에는 각각 33개, 28개가 있고 전북과 전남에는 각각 14개, 23개가 있다. 부산(3개), 인천(5개), 제주(1개)에도 있다. 핑클이 방송에서 캠핑카를 주차한 곳은 전북 진안 용담섬 바위, 경주 화랑의 언덕 등으로 정식 오토캠핑장은 아니다. 이 때문에 별도의 수도 시설이 없어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이와 달리 오토캠핑장에는 취사와 샤워를 할 수 있는 수도 시설과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캠핑카 렌트 가격은 비수기에는 하루 20만~40만원대, 성수기에는 70만원대다. 캠핑카 열풍을 반영해 일부 캠핑장은 카라반 펜션 등의 이름을 붙여 캠핑카 트레일러나 카라반을 숙박 시설로 설치해 놓았다.


캠핑카와 트레일러의 차이, 개조 차량 특징 알아야

관리 부담이 있지만 은퇴했거나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캠핑카를 몰고 산과 강을 벗 삼아 유랑하고 싶은 이들은 캠핑카를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캠핑카는 우선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캠핑카는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동식 주택이다. 자동차 안에 침대, 싱크대 등 주거 공간이 붙어 있는 형태다. 흔히 캠핑카라고 부르는 자동차다. 이와 달리 동력이 없어 자동차가 끌고 가야 하는 것은 트레일러 또는 카라반이라고 부른다. 캠핑카는 운전이 쉽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승합차인 현대차 쏠라티, 스타렉스를 개조한 캠핑카는 2종보통 면허만 있어도 운전할 수 있다. 핑클이 방송에서 타고 다니는 차는 쏠라티다. 오토 모드가 있어 2종보통 면허만으로 충분하다. 반면 트레일러를 사용하기 위해선 소형견인차 면허가 필요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6년 7월 소형견인차 면허 시험이 신설된 이후 올해 6월까지 총 1만5726명이 면허를 땄다. 응시자는 2016년 3448명, 2017년 7994명, 2018년 8879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트레일러를 연결해 사용하는 차량은 견인 능력이 충분해야 한다. 또한 고속 주행이나 급커브 시 전복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캠핑카를 살 때는 어떤 특성을 선호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국내 캠핑카 시장에서는 기동성이 있고 편안한 취침 공간이 확보된 모델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동성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내 공간이나 화장실 등을 포기해야 하고 모든 것을 갖춘 실내 공간에 초점을 맞춘다면 주차, 보관, 운행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트레일러보다 캠핑카에 관심이 있다면 완성차를 개조할 것인지 애초에 캠핑카로 나온 차를 구입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캠핑카의 80% 이상은 개조 차다. 현대차 스타렉스를 캠핑카로 개조한 차량 가격은 5000만원대. 여타 차량보다 저렴해 인기다. 같은 회사의 쏠라티를 개조한 차량은 1억원 이상이다. 르노삼성의 마스터를 캠핑카로 개조한 차량은 6000만원 중반에서 7000만원대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이베코의 승합차 뉴데일리를 개조한 캠핑카 가격도 이와 비슷하다. 트레일러나 카라반의 가격은 크기와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통 3000만원 이상이며 1억원을 넘는 것도 있다.

 

plus point

침대·싱크대에 샤워기까지, 완성차 업체 캠핑카도 인기

더 뉴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 실내. 사진 현대자동차

국내 완성차 업체 중 현대차는 캠핑카를 만든다. 현대차는 2018년 6월 더 뉴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를 출시했다. 침대, 싱크대, 전기레인지, 접이식 실내테이블이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 음식물 보관과 조리를 차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차량 후면에는 간이 외부 샤워기와 50ℓ의 물을 담을 수 있는 통이 붙어 있다. 가격은 5100만원이다. 2016년에 쏠라티 캠핑카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판매하지 않는다. 완성차 업체가 캠핑카 개조 전문 업체와 손잡는 경우도 있다. 현대차는 성우모터스, 쌍용자동차는 두성캠핑카와 손잡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객이 캠핑카 개조를 원할 때 성우모터스를 공식 개조 업체로 소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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